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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성분야 핵심기술에 대한 선행 연구 및 우주 시험 - KAIST 인공위성연구센터
    위성개발역사 - 국외

    1980년대 - 국제협력에 의한 우주개발
    1960년대 후반에 되자, 우주개발 경쟁으로 생긴 큰 액수의 돈이 국민의 생활을 어렵게 한다고 의견이 미국에서도 구 소련에서도 들려오게 되었다. 우주개발의 규모가 한 나라의 힘으로 수행되기에는 너무나 커지게 된 것이다. 미국과 소련은 보다 국민생활에 밀접한 실용 목적의 인공위성 개발에 힘을 쏟는 것으로 방향을 전환하였다.

    또한 혹성탐사에 관해서는 국제 협력을 도모하여, 보다 효율적인 관측 체제를 지향하였다. 1984년부터 1985년에 걸쳐 5기의 핼리혜성 탐사기가 구 소련, 유럽 우주기관, 일본에서 발사되었고, 이 커다란 국제협력 탐사계획은 여러 성과를 거두었다.
    1981년 4월 12일 - 우주 왕복선 콜럼비아호(Columbia) 발사
    우주왕복선 콜럼비아호가 우주여행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첫 우주비행에 성공하였다. 그 후 여러 번의 비행에 성공하였으며, 1982년 11월 11일 발사되어, 16일 무사히 귀환한 '컬럼비아 5호'를 마지막으로 시험우주비행 임무인 컬럼비아 계획이 끝났다.

    1983년부터는 실험우주비행 임무를 띤 첼린저호, 1984년 디스커버리호, 1985년 아틀란티스호가 실험비행을 하였다. 첼린저호는 1983년 4월 5일 4명의 우주인을 태우고 발사되어, 5일 동안의 임무를 마치고 10일 귀환하였다. 하지만, 1986년 1월 28일, 10번째 우주비행에 나서는 순간 공중 폭발하는 사고로 7명의 민간인 우주비행사가 목숨을 잃는 사고를 겪게 된다.

    한편, 소련도 우주왕복선 개발에 착수하여 1988년 우주왕복선 부란이 성공적으로 개발되어 임무를 완수하였다. 하지만, 부란의 첫 번째 우주왕복을 끝으로 소련은 우주왕복선 개발에서 손을 뗀다.

    콜롬비아호 발사장면 / 부란 발사장면

    1986년 2월 20일 - 소련 우주 정거장 미르 (Mir)의 중심 유닛 발사
    소련의 2세대 우주정거장 미르는 모두 6개의 접속장치를 가지고 있고 3개의 모듈로 구성되어 있다. 총 13미터 길이에 지름은 4.2m, 21ton의 대형 우주정거장으로 유리 로마넨코가 326일간 체류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하였다. 미르는 소련의 첫 우주왕복선 부란과 도킹하는 것으로 설계되었으나, 잦은 고장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다. 미-소 냉전이 끝나면서 미국 및 다른 서방의 우주인들이 미르를 방문하였다. 2001년 3월 23일 지구 대기권에 진입하면서 소멸되었다.

    미국 우주왕복선 아틀란티스호가 소련 우주정거장 미르에 도킹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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