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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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유럽의 각국도 우주개발에 적극 참여하려 했으나 그 결과는 부진하였다. 그러나 1965년 11월 프랑스는 자체 개발한 디아망 3단 로켓으로 최초의 인공위성 A1을 발사하였다. 이렇게 해서 인공위성 발사의 기술은 10년간 미국과 소련의 독점시대가 끝나게 되었다. 그 후 70년 2월 일본, 같은 해 4월 중국 등에 의한 인공위성 발사가 이어졌다. 인공위성 경쟁과 함께 우주선을 이용한 달의 개척도 치열하였다.
미국 내에서는 베트남전쟁의 격화와 군비(軍費) 증가로 정부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높아지자 급속히 우주개발 관계의 비용도 삭감되어 이 일에 종사하는 인원도 감원되었다. 따라서 바이킹계획, 보이저계획, 스페이스 셔틀계획 등을 제외한 많은 우주개발계획이 취소되었으며, 개발비용 삭감으로 그 개발진행의 속도도 늦어졌다. 이런 미국 사정과는 달리 다른 일본이나 유럽 여러 나라는 오히려 활발한 활동을 보였으며, 소련도 70년대에는 매년 100대 이상의 각종 위성을 발사하였다. 미국은 30대가 평균대수이었던 것에 비하면 큰 대조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양적 측면뿐만이 아니었다. 미국 최초의 인공위성은 14 kg이었던 것이 70년대 말에는 10 t을 넘는 것이 만들어졌다. 유인우주선으로 어떤 천체를 정복하는 대단한 성과는 없었으나 화성·목성·토성 등 행성에 대한 탐사가 이루어져 새로운 우주개발 연구성과를 거두었다.
금성은 약 1년 7개월마다 지구로 접근하기 때문에, 그때가 탐사기를 발사할 기회이다. 1961년 2월에 구 소련이, 그리고 1962년 7월에는 미국이 각각 금성 탐사기를 발사하였지만. 실패했다. 그 후에도 미국과 소련은 많은 금성 탐사기를 발사했다. 처음 금성 연착륙에 성공한 것은 1970년에 발사한 구 소련의 베네라 7호이다. 베네라 7호는 착륙 후 외부 냉각기를 이용하여 23분간 자료를 전송하였으며, 그것에 의하면 금성의 표면은 475도, 대기압은 90기압이었다.
러시아가 개발한 우주정거장의 역사는 3세대로 나눌 수 있다. 1971년에서 1976년까지 샬류트1호 (축포라는 뜻)로 명명된 1세대 우주정거장의 발사를 기점으로 하여 살류트 5호를 발사하기까지 거의 매 년 발사가 있었으며, 여러 가지 우주실험이 시행되었다. 그러나 무리한 우주개발 경쟁은 샬류트 1호에 거주했던 최초 의 우주비행사 3명을 질식사시키는 참사를 발생시켰다. 이 사건은 미소 양국의 국력 표출을 대변하는 우주개발 경쟁 속에서 별일 아닌 듯 묻혀졌으며 우주개발 열기는 갈수록 뜨거워져 갔다. 러시아는 샬류트 6호, 7호(1982년)를 거치며 2세대 우주정거장 시대를 지나 1986년 2월 마침내 야심작 3세대 미르를 탄생시켰다. 지상으로부터 약 400km 상공의 우주공간 속을 떠다니는 거대한 인공체 미르의 존재는 미국과 러시아의 우주 경쟁이 얼마나 뜨거웠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위성을 궤도에 올리기 위해서는 발사체(로켓)가 필요하다. 하지만 발사체는 한 번 사용하면 다시 쓸 수 없기 때문에 몇 번이고 반복해서 쓸 수 있는 우주왕복선을 만들자는 의견이 대두되었으며 1972년 미국의 리차드 닉슨 대통령에 의해 우주왕복선 개발 계획이 승인되었다. 이후, 1977년 8월 12일 제1호 실험기 '엔터프라이즈호'가 유인 단독착륙시험에 성공하였다.
한편 미국은 아폴로 계획의 종료 후, 1973년에 스카이랩 계획을 실시하였다. 하늘을 나는 소 실험실 스카이랩에는 3기의 아폴로 우주선이 도킹하여, 의학, 생리학상의 실험과 기상, 지질 관측 등이 시행되었다. 스카이랩은 1979년 7월 12일 예상보다 일찍 수명을 다하여 대서양 앞바다에 추락하였다.
1972년 5월 미국과 소련간의 협정 조인에 따라 1975년 7월 15일 미국과 소련의 우주경쟁을 마감하는 협조실험이 성공적으로 수행되었다. 소련이 먼저 발사한 소유스 19호가 궤도에 오른 뒤 미국의 아폴로 18호가 지상을 출발하여 궤도상에서 도킹, 최초의 공동비행을 하였다. 양국의 우주비행사는 서로 상대의 우주선을 방문하며, 함께 식사를 하였으며 전기등을 사용하여 합금을 만드는 실험을 시행하였다. 공동실험 후 다시 분리한 뒤 무사히 자기 나라로 귀환했다.
수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등의 탐사는 미국이 파이오니아 10호(1972년), 11호(1973년), 보이저 1호, 2호(1977년)를 발사하여, 많은 관측 성과를 남겼다. 이러한 탐사기는 태양계를 탈출하여, 현재도 우주를 비행하며 탐사를 계속하고 있다.